‘금융추진단’ 구성으로 속도 붙은 국내 ESG 공시 의무화, 기업들은 ‘불안’

ESG 금융추진단 첫 회의 개최, 공시 의무화 일정 세부화 등 논의 세계 각국 ESG 공시 의무화 제도 도입, IFRS 기준 세계 표준으로 올라설 가능성↑ “부담 과도하다” 우려 표하는 국내 기업들, 제도 안착 위해 정부 차원의 뒷받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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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재계와 산업계 전반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EU, 미국 등 해외 주요국들이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공시기준을 제정하는 등 ESG 공시 규율을 강화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ESG 정보 공시 의무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며 세부 규정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자본시장연구원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ESG 공시·평가·투자 관련 제도 전반을 정비하는 ESG 금융추진단의 첫 회의를 개최했다. 김 부위원장은 “ESG를 잘 실천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투자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공시, 평가, 투자로 이어지는 ESG 금융제도 전반을 대폭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 시행되는 ESG 공시 의무화, 기준 구체화할 것

금융위원회는 국내 ESG 공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ESG 공시 단계적 의무화 일정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25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 자산을 보유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가 의무화되고 2030년부터는 나머지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ESG 공시 의무가 확대될 예정이다. 하지만 적용 대상 기업, 공시항목‧기준 등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국내 기업들은 국제 이니셔티브가 발표한 다양한 기준을 활용해 자발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공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번 회의에서는 ESG 공시의 단계적 의무화 일정을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 부위원장은 “2025년부터 적용될 ESG 공시 단계적 의무화에 대비해 공시 의무 대상 기업, 공시항목, 기준 등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며, ESG 평가에 있어서도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노력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시 기준 구체화를 위해 정부는 올해부터 회계기준 제정을 담당하는 회계기준원 내에 KSSB(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설립 및 운영할 예정이다. KSSB는 ESG 공시기준과 관련한 국제 논의에 대응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의 ESG 공시 활동을 지원하고 국내에 적용될 ESG 공시기준을 검토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번 회의를 이끈 ESG 금융추진단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ESG 금융추진단은 ESG와 관련한 금융 분야의 다양한 정책 과제들에 대해 기업과 투자자, 학계, 유관기관 등과 함께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회의체다. 정부는 두 달에 한 번 개최되는 금융추진단 회의를 통해 ESG 금융제도 전반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사진=pexels

EU·미국 중심으로 확산하는 ‘ESG 공시 의무화’ 물결

ESG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제공하는 단편적인 정보를 넘어 ESG 관련 정보의 공시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됐다. 특히 유럽연합(EU)과 미국은 2021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1년 3월 EU는 그린워싱을 방지하고 금융기관의 자금이 ESG와 부합되게 운영되는지 공개하도록 하는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RD)’ 의무화를 시행했다. 같은 해 4월 EU 집행위원회는 기업의 비재무정보보고지침(NFRD)을 개정한 ‘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입안했으며 자문기관이자 유럽 ESG 공시 기준 제정기관으로 지정된 유럽 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은 CSRD 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유럽의회는 같은 해 6월 CSRD 최종안에 합의했다.

CSRD는 2024년부터 종업원 250명, 연 매출 4,000만 유로(약 544억 원)를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상장 여부와 상관없이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외국 기업의 경우 1억5,000만 유로(약 2,041억원)를 초과하는 기업이 의무화 대상이다.

미국 역시 비슷한 시기에 ESG 공시 의무화를 위해 움직였다. 2021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후 관련 금융 위험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6월에는 기후리스크 공시법 등 11개 주제로 구성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투자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하원을 통과했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정보공시 기준 초안’을 공개했으며 올 4월에는 최종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SEC의 기후정보공시 기준은 미국 상장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 관련 리스크와 리스크 관리 과정, 기업이 식별한 기후 관련 리스크가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영업활동과 연결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시장에 의무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SEC 기후정보공시의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는 제품의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인 ‘스코프1’,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기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 ‘스코프2’뿐만 아니라 제품 생산 외 협력업체, 물류, 제품 사용 및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인 ‘스코프3’까지 공개하도록 했다.

ESG 열풍에 대한 국내 기업의 부담감

국내 기업들은 ESG 공시 의무화 흐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국상장협의회가 코스피 상장사 797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ESG 정보공개 의무화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254개 사)중 88.6%가 ‘환경정보·정보보호 개별 법률에서 ESG 정보 공개 의무화가 추진되는 상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특히 큰 파장을 부른 것은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의 ESG 공시 기준이었다.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IFRS 재단이 설립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ESG 공시 기준 초안을 위해 지난해 3월 ‘IFRS S1 일반 요구사항’ 및 ‘IFRS S2 기후 관련 공시‘에 대한 공개 초안을 발표했다. ISSB 공시 기준은 SEC 기후정보공시와 마찬가지로 스코프3까지에 대한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IFRS는 기업의 전반적인 재무보고 시스템, 회계 및 자본시장의 감독 법규, 실무 등에 대한 ‘국제적 기준’인 만큼 ISSB가 마련할 ESG 공시기준이 곧 세계 각국이 채택하는 글로벌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ISSB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최종안은 최종 공표를 위해 의견 수렴 및 완화·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초 마무리돼 내년부터 본격 시행될 방침이다.

사진=금융위원회

국제사회에서의 ESG 공시 의무 강화 추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경제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ESG 공시 의무화가 국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으며 기준 적용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지침이나 예시 제공, 공시 요구 사항의 완화, 충분한 준비 기간 부여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ESG 전문가들은 더 이상 ESG 공시 의무화 흐름을 기업 부담이나 규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ESG 경영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만큼 ESG 공시 표준이 구축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차후 기업들이 공시 기준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 강화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의 우려를 잠재우고 ESG 공시, 관련된 평가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 기업이 ESG 경영을 위해 투자하는 동안 정부는 꾸준한 제도 정비, 관련 홍보 및 교육 등 탄탄한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