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 축소, 금융기관 외면, 유동성 난리, 벤처 투자 시장 ‘악화일로’

정부도 외면한다 ‘모태펀드 예산 삭감’ 유동성 시장 경색… 금융위기 올까 몸 사리는 투자자들 원금 보장에 이 정도 수익률? 예금으로 몰리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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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 업계의 돈맥경화 증상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레고랜드로 상징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성 위기가 벤처투자 시장으로까지 퍼졌다. 주요 출자자인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업계가 PF 유동성 위기관리를 이유로 출자에 인색하다. 최근 한 지방은행은 출자확약서(LOC)까지 쓰고도 출자를 이행하지 않았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이 LOC까지 쓰고 출자하지 않은 건 이례적이다. 2023년 정부의 정책자금 예산이 19.6%,  모태펀드 예산이 39.7% 감소했다. 자금 지원 규모가 2년 연속으로 감소했다. 긴축적 통화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시중 유동성도 축소되고 있다. 은행의 대출을 더욱 보수적으로 시행하고, 시중금리 상승에 따라 벤처 자금 시장의 주요 투자자인 금융기관이 예금, 회사채 등 안전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투자하고 있다. 실제로 2022년 3분기 벤처투자는 각종 악재와 고금리 등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1% 감소했다.

투자확약서(LOC) 써 놓고도 발 뺀다… 고통받는 VC들

투자확약서는 말 그대로 의향이 아닌 확약이다. 의향을 보여주는 투자의향서(LOI)와 달리 투자확약서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따라서 금융기관에서는 일반적으로 투자확약서 발행을 꺼린다. 발급 절차도 번거롭다. LOC를 통해 은행 내부에서 투자심사를 거치기 위해 금리 조건 등의 상세한 금융비용 산정과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준비해야 한다. 투자 부서 단독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신 심사부서에서 따로 결재받아야 한다. 사업 서류 검토나 문서 작성, 승인 등의 절차가 LOI의 두 배다. LOC를 철회한다는 것은 작성에 필요한 시간과 인력 등을 고려할 때 막심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지방은행은 액셀러레이터(AC) A사가 결성 중인 모태펀드 자펀드의 매칭 출자를 철회했다. 애초 해당 은행은 출자확약서(LOC)까지 썼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A사는 개인투자자를 모집해 남은 출자금을 충당하고 겨우 펀드를 결성했다. LOC 작성에 드는 품과 법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자를 철회할 정도로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벤처펀드 주요 출자자인 금융업계가 소극적으로 변했다. 벤처펀드 결성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신규 벤처펀드의 출자자 중 금융기관(산업은행 제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25.3%로 가장 크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모태펀드 예산을 삭감했다”라며 “벤처투자 시장을 관에서 민간 중심으로 바꾸자는 취지였지만,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이 계속된다면 벤처펀드 결성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위기 초래한 부동산 그림자 금융

가파른 금리인상에 따른 거래 부진과 함께 분양시장이 냉각된 상황에서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실기로 야기된 레고랜드발 PF 자금시장 경색 등 대형 악재가 겹치며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파트를 비롯, 부동산 전반에 걸친 가격 하락으로 인한 PF 사업 수익성의 급락으로 금융권 PF 대출 부실 위험 우려가 고조되며 지방 중견건설업체들의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시공능력평가(2022년 기준) 순위 8위인 롯데건설도 유동성 위기로 ‘부도설’에 휩싸였다. 롯데건설은 계열사들로부터 긴급 수혈을 받아 부도설을 잠재웠다. 롯데건설이 레고랜드발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자금조달 위기를 겪자 롯데케미칼(5,000억원) 롯데정밀화학(3,000억원) 롯데홈쇼핑(1,000억원) 등의 도움으로 총 1조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수혈받았다. 롯데건설은 6일 메리츠증권 주간으로 부동산 PF 채권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매각한 채권은 롯데건설이 보증하는 PF 사업에서 ABCP 등의 채권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매각 금액은 1조5,000억원 규모다. 최근 3개월 만기가 도래한 총 1조7,000억원 규모의 PF 차환에도 성공했다.

도와줄 계열사가 없는 중견 업체들은 상황이 다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22년 동안 종합건설업체 5곳이 최종 부도처리 됐다. 충남 종합건설업체 6위인 우석건설과 경남 창원의 중견 종합건설업체인 동원건설산업이 결국 부도를 맞았다. 같은 해 하반기에만 180건의 종합건설업체 폐업 신고가 접수됐다. 전년 동기의 135건보다 34% 증가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40개의 기업이 운영하는 233개의 건설 사업장 중, 코로나19로 인해 31개 (13.3%)가 공사 지연 또는 중단됐다. 기업 중 66%가 1~2개월 이내에 정상화가 가능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 (44%)과 “낮음” (22%)이라고 응답했으며, 6%가 “높음”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스 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PF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ABCP와 자산담보부 단기채(ABSTB) 중 만기도래 규모는 △1월 10조 7,600억원 △2월 9조 4,000억원 △3월9조 4,000억원이다.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약 41조원, 자산유동화증권(ABS)을 포함하면 상반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무려 73조원이다. 작년 11월 25일 발행된 한전 회사채가 6%에 가까운 금리에도 불구하고 목표 물량 소화에 실패했다. 회사채 발행시장의 위기다.

본질적인 문제는 왜곡된 자금 수급 구조에 있다. 레고랜드발 사태는 이를 들추게 된 계기에 불과하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금리가 상승하자, 채권 수급 기반은 취약해지고 채권 공급은 급증했다. 그 결과 저신용 기업은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졌고, 회사채 발행 대신 ‘증권신고’와 ‘수요예측’ 절차가 필요 없는 간편 금융경로(CP, ABCP, ABSTB)로 우회하여 CP, 전단채를 통한 자금 유통이 급증했다. 간편함의 비결은 당국의 건전성 검토나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시 의무 등이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그림자 금융시장’이다. 신뢰성 문제에도 감독 당국의 묵인 아래 급팽창했다. 이러한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가 ‘레고랜드’ 사태를 계기로 노출되어 자금 시장 전반의 신용 불안과 자금경색을 불러왔다. 특히 아파트 분양시장의 불황이 장기화할 경우가 문제다. 부동산 PF 대출 부실이 발생할 경우 구조적으로 여전사-보험사-증권사 등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져 금융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 포레온)의 최종 계약률이 올해 분양시장의 척도가 될 것으로 본다. 둔촌주공 계약 마감일은 오는 17일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오는 19일 만기가 돌아오는 ABCP 등 사업비 대출 7,231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초기계약률 77%를 넘기면 계약금으로 대출금 전액 상환이 가능하다. 만약 조합이 대출금 상환에 실패하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짐작하기 어렵다.

예금 금리 경쟁에 외면받는 벤처 투자

은행들의 금리 경쟁도 벤처투자 업계의 악재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으로의 수신 고객 이탈을 막으려는 저축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이 앞다퉈 파킹통장 금리를 올렸다. 앞서 토스뱅크는 지난달 13일 ‘토스뱅크 통장’ 최고금리를 연 4%로 인상했다. 케이뱅크도 최근 파킹통장 ‘플러스박스’ 금리를 연 3%로 0.3%P 올렸다. 저금리 시대에 인기있던 중위험 중수익 상품의 수익률은 대개 연 5~7% 정도였다. 상황이 달라졌다. 금리 상승으로 예금을 비롯해 손실 위험 없는 투자 상품들이 5%대 수익을 보장하고 있어 이들 상품으로의 자금 유입이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벤처투자의 매력이 떨어졌다. 벤처투자로 IRR 10%를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최소 15%, 20% 이상이어야 한다. 최근 주식형 펀드들도도 주식을 줄이고 예금을 자산으로 편입하는 비중을 높이고 있다.

투자사들까지 투자를 꺼리고 있다. 금리가 인상되며 위험을 안고 투자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비상장 기업의 경우 VC에서 투자를 해줘야 하는데 금리인상으로 VC들도 펀드를 조성하기가 어렵다. 자금을 조달해도 금리가 너무 높아 예전에 비해 수익이 훨씬 작다. 벤처보다 원금이 보장되고 수익이 더 큰 투자처로 옮기게 된다. 펀드 조성도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 모태펀드 예산안도 감소했다. 민간투자자 유치도 어려운데 정부 투자자도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벤처펀드의 모태펀드 의존도를 줄여 민간 주도 시장으로 전환하려는 중기부의 취지는 좋으나, 벤처투자 시장에서 모태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축소 속도가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결성된 벤처펀드에서 모태펀드 출자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 지난해 유동성 증가로 비중이 17.3%까지 감소했지만, 여전히 금융기관 등을 포함한 출자자 중 단일 주체로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 VC 관계자는 “부동산 PF 유동성 위기와 더불어 고금리로 안전자산 수익률이 높아지며 벤처펀드가 외면받고 있다”라며 “내부수익률(IRR) 10% 이상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