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도 작동하는 ‘전고체 이차전지’ 기술, 239억에 기술이전 완료

자르고 구겨도 작동하는 ‘전고체 이차전지’, 239원 규모 기술이전 성공 화재·폭발 위험 적고 밀도 높은 전고체 배터리, 문제는 기술력 아닌 ‘상용화’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력 향상 이어지는데… 시장에서 경쟁력 갖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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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도 구동하는 전고체 이차전지/사진=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기초과학지원연)이 개발한 ‘전고체 이차전지’ 기술이 239억원에 팔렸다. 기초과학지원연은 22일 오후 대전 유성호텔에서 ‘솔리드앤이에스’와 전고체 이차전지 기술이전 협약식을 개최했다. 솔리드앤이에스는 기초과학지원연에 정액기술료 239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번 기술 이전 규모는 25개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김해진 기초과학지원연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자유 변형이 가능한 전고체 이차전지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자르거나 구기는 등 ‘극한의 변형’에도 정상 작동하며, 1㎜ 이하의 얇은 두께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활용해 웨어러블(Wearable·착용할 수 있는) 기기는 물론, 전기차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 가능해 보인다.

김해진 박사는 “이번 기술은 고용량화, 경량화, 자유로운 형태 변형 등 장점 때문에 기존 리튬 이온 전지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며 “추가 연구개발을 통해 고안전성, 고용량의 전고체 이차전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태화 솔리드앤이에스 대표는 “전고체 이차전지는 미래 유망 기술로 빠른 시장 선점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기술 이전으로 세계 전고체 이차전지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배터리 경쟁 시대, 전고체 배터리란

이차전지는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기를 발생시키는 원리로 작동한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리튬 이온들이 전극을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온 전도도가 높은 액체 형태의 전해질(전해액)을 사용한다. 하지만 액체 전해질을 사용할 경우, 배터리의 내부 안정성 향상을 위해 양극과 음극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는 분리막이 필요하다. 분리막은 변형·충격 등에 의해 훼손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 경우 열폭주로 인한 화재와 폭발 위험이 있다.

반면 고체 전해질을 활용하면 분리막이 없는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유기물 형태로 구성된 액체 전해질과 달리 고체 전해질은 그 자체로 분리막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온도 변화로 인한 부반응이나 외부 충격에 따른 누액 위험이 적고, 화재와 폭발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전해액과 분리막이 없으므로,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물질을 첨가할 수 있어 고밀도 배터리 구현도 가능하다.

현재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서는 치열한 전고체 배터리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는 2020년대 후반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할 것이라는 목표를 밝힌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까지 고분자 전고체 배터리를, 2030년까지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삼성SDI와 SK온은 각각 2027년과 2020년대 후반에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기술의 발전이 곧 상용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차세대 리튬 이차전지로 알려진 전고체 이차전지용 ‘전도성 바인더’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전도성 바인더는 접착력이 높은 고분자 소재로,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할 수 있어 고성능 전고체 이차전지 구현에 필요한 기술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전고체 배터리가 직면한 난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고, 제품 생산을 위한 기술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터리 업체 관계자들은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으며, 기술적 난제 해결과 양산은 별개라고 지적한다. 실제 수율(생산 시 정상 제품을 얻어내는 비율) 및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술은 난제를 해결할 수는 있어도, 상용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전기차 업체가 사용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전고체 배터리 가격이 비쌀 경우,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배터리와 경쟁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아무리 빼어난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해도 상업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서는 도태된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인터배터리 컨퍼런스에서 이존하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개발센터장은 “2030년 이전까지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가능성을 낮게 본다”며, 현 리튬이온 배터리의 기술개발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만큼 사실상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가 힘들 수 있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올해 11월 1일 배터리산업의날 행사에서 산업포장을 받은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셀선행개발센터장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소재 개발 중요성을 강조하며 “생각보다 전고체 배터리의 기술개발 및 상용화가 쉽지 않다”며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번 기술이전은 수많은 기술적 난제와 비판에도 불구,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의 ‘가능성’을 연 하나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세계 전고체 이차전지 시장은 매년 34%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7년에 약 4억 8,250만 달러까지 그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기술이전 이후 꾸준한 연구개발 및 기술 발전을 통해 상업성을 갖춘다면, 세계 전고체 이차전지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